오늘날 명품 브랜드 중 가장 핫한 브랜드 구찌(Gucci)의 이야기
구찌오 구찌
구찌(Gucci) 창업자, 구찌오 구찌는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업으로 밀짚모자를 만드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밀짚모자 제조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판단하고 당시 전 세계의 부호들이 모이는 런던의 사보이 호텔(Savoy Hotel)에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벨보이로 일하며 귀족과 상류층의 문화를 익혔으며, 많은 종류의 럭셔리 가방과 고급 가죽 여행가방을 접하게 된다. 이때 구찌오 구찌는 고급 가죽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자신의 고향 이탈리아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 공방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가죽 제조 기술을 살려 1921년 자신의 이름을 딴 구찌(Gucci)를 설립한다. 초창기 구찌는 장갑 및 부츠 등 고급 가죽 승마용품을 중심으로 한 가죽 제품을 선보인다. 승마를 스포츠로 즐기는 이탈리아 귀족들에게 단숨에 인기를 얻으면서 이후 핸드백, 신발, 벨트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한다.
(왼쪽)디아만테 캔버스 / (오른쪽)구찌 로고가 들어간 캔버스
하지만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0년대 국제 연맹이 이탈리아로 수출 금지령을 내려 금속과 가죽 등의 소재가 부족하게 된다. 이런 위기 속에서 구찌오 구찌의 아들 알도 구찌(Aldo Gucci)는 가죽 대신 대마, 삼마, 황마, 대나무 등의 대체품을 소재로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통해 구찌의 첫 시그니처 디아만테(Diamante) 캔버스가 탄생한다.
그와 함께 유일하게 수입 가능했던 대나무를 활용하여 가방의 손잡이를 만들었고, 이 손잡이를 사용한 뱀부 백이 출시하자마자 인기를 끌면서 구찌를 전세계적으로 찾는 브랜드로 만들었다. 당시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기회가 된 셈이다.
그와 함께 매장 확장에 힘을 쏟으며 로마, 밀라노, 뉴욕 등에 진출하게 되었고, 특히나 뉴욕은 이탈리아 브랜드 최초로 뉴욕에 진출한 브랜드가 되었다.
1951년에는 말 안장에서 영감을 얻는 GRG(Green Red Green)으로 이루어진 삼선 마크 ‘더 웹’을 개발했으며, 지금까지 구찌를 떠오르게 하는 대표적인 트레이드 마크로 활용되고 있다.
이후 구찌오 구찌의 사망으로 알도 구찌와 로돌프 구찌가 경영권을 나눠 가졌는데 알도 구찌는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딴 GG로고를 만들었으며, 재키 백(Jackie Bag)을 만들어 구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구찌는 1980년대부터 가족 경영의 위기를 겪으며 경영 부진을 겪었고, 많은 사생활 논란으로 브랜드 이미지가 추락하고 만다. 특히 마우리치오 구찌 사건으로 인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를 배경으로 제작된 <하우스 오브 구찌> 영화가 있다.)
톰포드
가족 경영으로 인한 한계에 부딪힌 구찌는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였고, 이후 1994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톰 포드(Tom Ford)를 발탁한다.
톰 포드는 젊은 층을 공략하면서 구찌의 기존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매장과 광고 이미지까지 총괄적으로 감독하면서 파산 위기에 처했던 구찌는 최고의 브랜드로 부활하게 된다.
알렉산드로 미켈레
10년간의 시간 동안 톰 포드는 구찌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만들었고, 현재는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바통을 이어받아 구찌를 이끌고 있다.
참고
나무위키
지식백과
핀터레스트
네이버이미지
구글이미지
COMMENTS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